눈은 제게 늘 쉽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광주에서 보성으로, 광주에서 목포로 출퇴근하던 시절, 겨울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눈’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밤새 뒤척이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혹여나 다음 날 도로가 얼어붙지는 않을까, 새벽같이 나서야 하는데 차가 눈 속에 파묻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이 수북이 쌓인 차를 보면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손 시린 줄도 모르고 트렁크에 있는 우산과 먼지털이를 들고 나가 눈을 치웠습니다.
얼어붙은 유리창을 녹이기 위해 차 안에서 히터를 틀어놓고 사용이 정지된 카드로 유리창의 서리를 제거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결국, 출근 준비를 마치고 도로로 나서면 벌써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운전도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평소보다 몇 배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핸들을 꼭 잡았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고, 신호가 바뀌어도 선뜻 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로 위에서 느껴지는 작은 미끄러짐조차 아찔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출근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당신 손에 주어진 게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거기서 행복을 찾아낸다면 '만족을 아는' 충족감으로 인해 마음은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그 맑은 마음의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차원의 생명들을 기쁘게 하고 끌어당길 것입니다.
-코이케 류노스케, <초역 부처의 말>
그런데 오늘, 퇴근길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지금 출근하는 학교 바로 앞에 살고 있습니다.
지하주차장도 있어 아침마다 눈을 치울 필요도 없습니다.
출근길에 운전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따뜻한 패딩을 입고 걸어 나서면 됩니다.
눈이 오면 걱정부터 앞서던 그때와 달리, 오늘은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서둘러 가야 하는 길도 없고, 차가 미끄러질까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로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빠, 눈이에요!”라며 신나게 외치는 아들의 얼굴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보다 더 반짝였습니다.
작은 손을 뻗어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눈이 그저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눈 덕분에, 그때의 고생을 떠올리며 현재의 편안함에 더욱 감사할 수 있습니다.
눈이 내리면, 어떤 이들에게는 낭만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고된 하루의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제,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왔기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눈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안전운전하시길 바랍니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듯, 여러분의 하루도 따뜻함으로 덮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작은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따뜻한 기억이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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